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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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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성자 김강산
내용 삼을 관광 상품화하자

상사미는 태백시에 남아 있는 가장 넓은 땅으로,
한 때 경비행장 건설 소리가 들리던 곳이다.
우리는 이 넓은 땅을 잘 활용할 안을 생각하자.

우리는 지금 삼(蔘)이라 하면, 산삼(山蔘)과 인삼(人蔘)으로 구분하여 말한다.
당연히, 산에서 절로 자라면 산삼(山蔘)이라 하고, 밭에 심어 사람이 관리하면 인삼(人蔘)이라 한다. 그 중간쯤을 장뇌삼(長腦蔘)이라 한다.

본디, 상하사미는 삼(蔘)의 본고장으로,
옛날부터 삼공(蔘貢)이 심하여, 마을이름을 삼(蔘)이라 불렀고,
삼이 사미로 변한 것이며, 나중에 면적이 넓어 나눈 것이 상사미고 하사미이다.

허목(許穆)의 척주지(陟州誌) 장생리(長生里) 조에 보면,
“죽령의 서북쪽이 갈전이고 갈전 남쪽이 조탄이며 조탄 남쪽이 삼(蔘)이다. 삼 서쪽은 울탄이고...(중략)...삼 남쪽은 건의령인데 서남쪽으로 태백산이 바라다 보인다.”(竹嶺西北葛田葛田南助呑助呑南蔘蔘西鬱呑...蔘南巾衣西南望太白)
라고 하여, 상사미와 하사미를 삼(蔘)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어찌하여 마을 이름을 삼(蔘)이라고 불렀을까? 그것은 조선조에서 대동법(大同法)이 시행되기 앞에 사미리 지방에서는, 특산물인 삼(蔘)을 삼공(蔘貢) 곧 조세공물(租稅貢物)로 바쳤기 때문에, 그 조세공물인 삼(蔘)을 마을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삼이 사미로 변하고 마을이름도 사미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四美里(사미리)로 된 것이다. 뒤에 士美里(사미리)로 바뀌긴 하였다.

척주지(陟州誌)에 보면,
“...(전략)...갈전과 삼은 가장 깊은 산중으로 마을이 아름답고 사람들은 오래 산다. 그러므로 그 백성들은 공물로 대개 목재와 삼, 복령, 꿀, 오미자, 백화사 등을 바치고 마포(삼베)가 잘 된다.”(...葛田蔘最山中佳村多壽考其民供凡瓌材蔘苓密五味子白花蛇有麻布之利)
라고 하였으니, 그때 공물(貢物)로 삼(蔘)을 바쳤음을 알 수 있고, 지역에 사는 노인들의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삼을 공물로 바쳤다고 한다.

조선조 중기 뒤 대동법(大同法)이 시행되기 앞에는, 각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던 때가 있었다.
그 때 사미리 부근 사람들은 심(산삼)을 캐다 바쳤다.
중간에 삼척도호부 아전들이 농간을 부려, 없는 삼을 더 캐서 바치라 하니, 죽을 지경이라, 그래서 자구책을 마련할 밖에, 그동안 캐서 바치던 산삼씨를 받아 자기만 아는 곳에 뿌려, 때가 되면 캐다 바치니 이것이 장뇌삼의 시작이다.

그 장뇌삼이 풍기로 가고, 조선시대 멸시 받던 개성사람들이 가져가 심고, 휴전선이 가로 막히자 강화로 가고, 그것이 다시 금산으로 간 것이 지금의 인삼이다.
또 기후변화인지 요즘엔 강원도 홍천인삼이 인기가 있고, 기존의 인삼 고장이라 하는 곳의 삼시장에 가보면, 거의가 강원도 홍천인삼이 차지한다. 그곳들에는 더 이상 인삼재배가 아니 되고, 이름만 있을 뿐이다.

대동법(大同法) 시행 뒤 토산품을 바치던 일이 사라지고, 그 장뇌삼 풍습이 산 넘어 삼척시 대이리 골말로 이어지고, 골말의 삼이 삼척시 여삼리로 가고, 지금은 삼척시 여삼리 장뇌삼이 자리 잡았다.

본디, 장뇌삼이란 것이 산삼 씨를 받아다가 심은 것으로, 그것이 인삼이 된 것이다.
말하자면, 사미리 사람들이 품종 개량을 하여 산삼에서 인삼으로 만든,
장본인들인 셈이다.

옛 문헌에 보면,
인삼이란 말이 없고, 그냥 삼(蔘)이라 하였는데,
이때의 삼은 산삼을 말하는 것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삼이 나나,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사미리 삼이 유명했던 것은,
석회암이 많아 삼이 단단하고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 본다.

장뇌삼(長腦蔘)의 장(長)자가 태백시의 옛 이름인 장생(長生)의 장(長)자와 같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유래가 장생면(長生面)의 삼(蔘)에서 곧 사미리에서 만들어졌기에, 처음엔, 먹으면 오래 산다고 장생삼(長生蔘)이라 하였고, 산에 돌이 많아서인지 장뇌삼(長礧蔘)이라 하였는데,
나중에 쓰는 자가 요두 곧 나름 뇌두(腦頭)가 길다고 느꼈는지,
장뇌삼(長腦蔘)이라고 표기하고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삼에는 각 부분에 이름이 있는데, 발뿌리에 맺히는 것을 이슬이라 하고, 삼의 몸통을 약통이라 하고,
약통에 둘러 있는 것을 가락지라 하고,
본디 요두라는 것은 노두(蘆頭) 노두(露頭)에서 왔다고 보지만,
삼이나 더덕 도라지 지치(주초) 등 약초는 머리 부분을 요두라 하는데,
특정한 한자가 없다. 다만,
부르는 사람마다 달라 그냥 요두 노두(露頭) 뇌두(腦頭) 또는 뇌수(腦首) 등으로 부르고, 요두에서 나온 뿌리를 턱수라고 부른다.

특히 천종산삼(天種山蔘)과 비슷할수록 약통과 요두(뇌두) 사이가 길어 긴 뇌두라 하여 장뇌(長腦)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장뇌삼의 특징이 요두가 긴 것이다. 요즘엔 요두를 길게 하는 기술이 있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지금 부르는 장뇌삼 이름이 맞는지도 모르고,
새로운 이름을 지을 수도 있고,
옛날 부르던 장생삼(長生蔘)이나 장뇌삼(長礧蔘)으로 해도 되고, 태백시이니 태백삼(太白蔘)이라 해도 된다고 본다.

말하자면, 풍기인삼이니 개성인삼이니 강화인삼이니 금산인삼이니 하고,
삼 축제를 벌이는데, 그들 삼시장에 가보면, 그들의 삼은 없고,
강원도 홍천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도 장생삼이나 태백삼이라고 한다면, 특색 있고,
삼의 본고장이 되며, 삼의 대명사가 될 수 있다고 보며,
우리도 이 유풍(遺風)을 살려 주민소득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고금(古今)을 통틀어, 우리 땅의 함백산 산개골 안쪽 심마니 광터에서 캔,
산삼이 가장 큰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무려 6자나 되는 산삼, 약통 속에 든 황수(黃水)만 이승만이 먹고, 나머지 부분은 알콜에 담가놨다나 뭐래나...
그래서 이승만이 죽을 때 숨이 넘어가 죽은 줄로 알았는데, 살아나고, 이 일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삼을 먹으면 죽을 때 애를 먹은 것으로 소문이 났다.

사미리 부근이 삼의 본고장이므로 대량의 삼 재배를 한다면,
그 명성을 이어갈 것이며 새로운 재배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새로운 제품이 나올 것이다.

각설하고,
마이 무따 아이가? 배지 터질라 칸다.
깜도 아니 되는 게 이자 고마 내려와야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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