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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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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허구의 백두대간 말고 태백북맥이라 하자
작성자 김강산
내용 백두대간의 허구

요즘 산악인들이, 검증도 없이,
백두대간이니, 1대간 9정맥이니 하는 말들을 무슨,
금과옥조나 되는 듯, 신주(神主) 모시듯 하며,
국회에서도 덩달아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까지 제정, 난리를 치고 있다.

엄격히 말하면,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허구(虛構)이며,
있지도 않은 산줄기를 만들어 우리들을 속이고 있다.

애국가(愛國歌)에 ‘동해물과 백두산이...’라는 소절이 있고,
헌법에 우리 국토를 말하길,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그 정점에 백두산이 있다.
물론, 간도(間島)지구는 뺀 채로...
그리고 압록강과 두만강의 발원지가 백두산이라나 뭐라나? 그건 국경선을 말하는 거고 실지는 장백산인데...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백두산 운운으로 배웠고, 백두산 하면 민족의 영산으로,
시조가 강림한 산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막연하게 백두산을 되뇌이며 우리들 가슴속에 저장되었고,
백두산, 백두라는 말이 들어가면, 일부는 빼고. 괜히 낯설지 않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그것을 휴전선이라는 강제 선을 핑계 삼아, 제대로 확인도 않은 채,
우 따라가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조선조 말이나 대한제국 때 사상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이고, 아직도 헛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위정자들의 잘못이지...

백두대간은 풍수지리설과 국토의 경계가 결합한,
조선 후기 엉터리 상상의 결과물이고,
조작이고, 거짓이다.

서기1991년 9월 17일,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며,
상대를 인정하여,
휴전선 남쪽은 ‘대한민국’이라 하고,
휴전선 북쪽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 하고 있다.
괜히 형제 어쩌구저저구 헛소리 말구, 말과 문화가 비슷한 2국 체제로,
흡사, 옛날 3국시대나 4국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그러므로 백두대간이란, 있지도 않은 조작 엉터리 산줄기를, 무슨,
신주 모시듯 하는 것은, 과학을 지향하는 현대인에게 당키나 한 일인가?
물론,
휴전선 북쪽은 관리하지도 못하며,
휴전선 남쪽만 백두대간 운운하며 관리하는 모양새다.

지리산이 높다 한들,
태백산에서 뻗어간 남쪽 산줄기에 있고,
설악산 금강산이 높고 아름답다한들,
태백산에서 뻗어간 북쪽 산줄기에 있다.
그들 산을 지리산맥이나 설악산맥 금강산맥이라 부르지 않고,
오직, 태백산만이 태백산맥이라 한다.

백두산에서 뻗은 산줄기는 원산 부근에서 남대천을 넘지 못하건만,
남대천을 무시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겨레의 정서와 자존심만 내세웠지,
과학성이 결여된 엉터리 산맥 개념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태백산에서 북쪽으로 뻗어간 금강산 끝자락이 안변 땅이고,
백두산에서 남쪽으로 뻗어간 끝자락이 원산 땅이다.
안변과 원산 사이에는 남대천이 엄연히 있고,
남대천(南大川)은 안변을 거쳐 고산, 세포를 지나 평강고원까지 이어진다.
옛말에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산경표에 나오는 산줄기도 물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굳이 추가령구조곡(楸哥嶺構造谷)을 들먹이지 않겠으며, 지리학자(地理學者)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풍수지리설과 짐승타령에 매달려 있을 것인가?
조선조 후기 풍수지리설과 국토의 경계가 결합한 백두대간 틀에서,
깨어나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백두산에서 북쪽으로 뻗어간 산줄기는 왜? 말 안하냐? 그건 남의 나라 땅이니까,
겨레의 정서와 자존심만 내세웠지, 과학성이 결여된 엉터리 산맥 개념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산을 끊고 직강공사(直江工事)를 하고 국토를 효율성 있게 하는 지금,
옛 사고를 고집한다면, 우리들은 후진성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앞으로 국세(國勢)가 커져 국토(國土)가 넓어진다면,
태백산지구 장백산지구 간도지구 등등으로 확대하면 될 일이다.
안 해본 자가 해본 자를 이기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백두대간이란 말이 나온 것은 서기1980년대이다.
그 중심에는 이우형(李祐炯)이란 사람이 있다.

때는 서기1903년,
왜인(倭人)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소등문차랑)에 의해,
조선산악론(朝鮮山嶽論)이라는 논문(論文)이 발표되고,
이어 왜(倭)의 식민지(植民地)가 되자,
왜(倭)에 의해 운영되는,
학교교과서에 고토분지로의 논문에 기초하여 입맛에 맞게 실으면서,
조선의 산맥체계가 그대로 굳어지는가 싶었는데,
조선 영조(英祖) 연간에 발간된, 작자 미상의,
산경표(山經表)를, 서기1913년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산경표’ 영인본을 발간하면서,
왜(倭)에 의해 발표된 산줄기 체계에 반하여,
우리 고유의 산줄기 체계가 있었음을 알리는 민족적 계몽운동이 있었다.

이러구러 세월이 흘러, 잊혀졌던 산경표 영인본이,
서기1980년대 서울의 한 고서점에서 발견된다. 발견한 사람은 이우형씨...
그래서 세상에 다시 나타나면서,
산악인들 사이에 퍼져나가 너도나도 백두대간 운운하게 된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아직도 조작, 엉터리, 백두대간 운운치 말고,
태백산에서 북쪽으로 뻗어간 산줄기,
태백북맥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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