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소통참여
소통참여 시민게시판

시민게시판

작성일 2024.03.10
소통참여>시민게시판 상세보기 - 제목, 작성자, 내용, 파일, 제공
제목 검룡쏘 이야기
작성자 김강산
내용 검룡쏘 이야기

한강의 발원지로 소문난 검룡쏘,
내가 서기1984년 여름에 발견하고, 검룡쏘(儉龍沼검룡소)라고 명명(命名)하였으며, 그 뒤
서기1986년 준설하였다.

처음 태백문화원 설립신청을 하였지만. 허가가 나지 않아 차일피일 하던 때,
태백문화원 사무국장으로 내정은 되었지만, 시간이 있어,
그때는 사조동이 삼척군 하장면 땅으로 태백시에 편입되기 앞이라,
창죽동이 태백시에서 가장 북쪽이므로 창죽동부터 조사를 시작하다가,
검룡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때 초대 원장 황윤덕씨가 100만원을 내놓아,
준설하게 된 것이다.

태백시에서 서기1988년 재차 준설하였고,
그때 나기정(羅基正) 시장이 분주재골과 갈라지는 지점에서
검룡쏘까지 하천을 따라 길을 만들었고,
아울러 목조와가 둥근 기둥 육각정의 儉龍亭(검룡정)을
세우고 주변을 정비하였다.

그 앞에 서울에서 50000분의 1 지도를 사와 圖上測(도상측) 한 결과, 오대산 우통수 보다,
이곳 검룡쏘가 약32km가 더 길다는 것을 밝혀낸 뒤, 한강발원지란 확신을 가지고
홍보에 매진하였다.

처음 국문법을 잘 몰라 검룡쏘를 ‘검용소’라 하고, 이헌직(李憲稷,庚寅生)씨에게
기부금을 받아 안창죽골 어귀 다리 앞 길가에 간판을 세우기도 하였으나, 나중에 국문학자에게 물어보니, 앞에 오면 ‘용’이고 뒤에 오면 ‘룡’이라고 해 지금처럼 바꾼 것이다.

서기1997년 7월 19일, 제1회 한강대제라고 하여 검룡쏘를 중심으로
축제를 열었다.
처음 만들 때, 음력으로 6월 15일이라 流頭節(유두절)을 생각하고,
마침, 검룡쏘의 물이 동류수(東流水)이기에,
나라풍속(國俗국속)이며, 東流水頭沐浴(동류수두목욕)의 문구를 염두에 두어,
그 깊은 산속으로 오시는 손님들을 위해, 流頭麵(유두면)을 만들어 대접하였다.
제3회부터 국민들이 8월 첫 주부터 본격 여름휴가를 가는 것에 착안, 매년 8월 첫째 일요일로 바꾸었고, 태백을 대표하는 여름축제로 만들고자 하였다.

축제의 내용은 용신제를 시작으로,
물 많이 먹기, 물속에서 숨 오래 참기,
물 빨리 먹기, 등을 하였다.

그리고 태백역 앞에서 안창죽까지 무료 서틀 버스를 운행하였고, 검룡쏘를 디자인하여 깡통 기념품 뺏지(badge:배지)를 만들어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발견 뒤부터, 수도권에 있는 중고등학교 역사지리 선생을 초청하는 등 검룡쏘를 알렸다.
그 학생들이 자라 성인이 되었겠지?
무려 20여 년간, 모든 사람들이 미치거나 헛G랄이라며 수군데도 계속하였다.

20여년 뒤, 강원도에서, 수도권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강원도하면, 생각나는 것 10개를 쓰시오’ 했더니,
그 10개 속에 검룡쏘가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론에 소개되고,
급기야는, 서기2010년 8월 18일 국가지정 명승 제73호가 되었다.

헛돈 쓰면서 헛공사 하며 도둑질 말고,
한강대제나 적극 지원하길 바란다.

이곳을 중심으로 여름축제를 열고, 캠핑장 등을 만들어,
수도권 관광객을 불러 모으자.

그리고 하천에 있는 바위 틈 때문인지 건천(乾川)이 생겨,
보기에 안 좋으므로,
몰탈로 메우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물이 흐르게 하는 수도 있다.

검룡쏘를 검소할儉(검)을 넣어 명명한 것은 왕검(王儉) 할아버지를 생각하여 넣은 글자이며,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우리겨레의 뿌리이듯, 검룡쏘(儉龍沼검룡소)도 한강의
뿌리이므로 그렇게 한 것이다.

이무기 전설은 산 넘어 화전동 굴쏘의 전설을 모방 창작한 것이다.

처음 제1회 한강대제를 할 때,
세집모테와 검룡쏘 사이의 산비탈에 간이 화장실 10개를 만들었고,
안창죽 어귀인 큰 늪이 있던 곳,
곧 예비군 훈련장 부근에 주차장을 만들기도 하였다.

제6회 한강대제를 개최한 뒤에,
사회단체를 끌어드려 태백시민들이 참여하는 축제로 만들고자,
여러 사회단체들을 만났다.
축제란 특정 단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들고,
태백문화원은 또 다른 축제를 만든다는 생각이었고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내 눈에,
기존의 유지연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회단체는 년간 외국에 회비로 나가는 돈이 엄청나,
외국으로 돈이 안 나가는 단체는 없는가하고 알아보니,

그때는 별 볼일 없다고 여기는, 말하자면, 비주류라고 하는, 아웃사이드와 같은,
국내 자생단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상록회이다.

처음 참여하라고 하니 안 하겠다고 하였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주축이었는데,
그들을 만나 설득하고 의미를 부여하니 마침내 수락하였다.
그래서 제7회 때 상록회와 공동으로 하면서,
축제를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부대 장비도 모두 주며 독자적으로 하라 하였다.

이러한 것을 실천하듯,
그해 제1회 낙동강 발원제를 만들어,
황지늪에서 개최하였다.

내 계획은 또 다른 축제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태백문화원에서 나오게 되었다.

여기에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대한제국 말기를 지나, 왜정(倭政) 때,
파리 장서(長書)를 만든 유림(儒林)의 대표였던 俛宇(면우) 곽종석,
왜(倭)의 식민지가 되자, 죄인이라며, 곽종석에서 곽도(郭鋾)로 이름을 바꾼 그는
검룡쏘 위쪽 화전민 터에 머물면서,
무려 17수의 詩(시)를 지은 것이 있고, 그 가 머문,
화전민 집터가 검룡쏘 위쪽에 있기에, 이를 접목하여 잘 활용하면,
엉터리 스토리텔링인가 뭔가를 말고,
대한민국 건국의 장이나 화전농경사로 승화 시킬 수 있다고 본다.
파일

담당자 정보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 공간정보과
  • 담당자 : 전산팀
  • 문의전화 : 033-55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