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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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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곡
작성자 김강산
내용 향토사의 왜곡

얼마 앞 황지 늪가를 지나는데,
경사 장규익 비가 있던 곳에 비는 안 보이고 왠? 돌로 된 구조물이
서 있고, 태백시장 명의로 글이 써져 있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전략)...1955년 潢池 5천여 住民들이 德과 仁을 편 當時 派出所長
張圭益警査의 공을 받들어 황지1리 연못가에 세운 善德碑다.
當時 善德碑추진위원회 委員長인 朴해수노인(72세 황지5리)에
의하면 張警査는 6.25修復後 戰爭의 뒤안길에서 生活苦에
허덕이던 潢池 천오백家具 5천주민들을 위해 張警査의 本家인
江陵에서 30마리의 당나귀를 동원.5백가마니의 쌀을 이곳에
옮겨와 굶주림에 허덕이던 住民들을 구해줬다는 것.
이후 3개월간 장경사는 저녁때면 연기가 나지않는 관내 民家를
찾아 자신이 먹지않고 쌀을주어 밥을 짓게 했다고 한다.
이같이 덕으로 僻地炭田村을 위해 몸바쳐온 張警査의 뜻을
저마다 알게된 주민들은 1년재임後 이곳을 떠나자 그 뜻을
길이 後孫에까지 保全하기 위해 당시 5천住民들이 碑를 세웠다.
그의 鴻恩과 청렴성을 높이 사 태백시에서 비를 정화 한다.
2023년 11월 17일
太白市長”

세상에 이런 엉터리 거짓말이 어디 있으며, 이게 바로 향토사의 왜곡이다.
뭣도 모르는 사람이나, 세월이 지나면, 그래도 태백시장이라는 자가
세웠으니 믿는 거다, 똥개 판이지, 진실을 말하겠다.

이미 비를 세운 자들 모두 죽었다. 내 나이가 70이 넘었으니...
장규익이란 사람의 아들 장 모라는 사람, 삼척mbc에 근무했다.
내 나이 30대 때 장규익씨와 통화했고, 그 아들이 나에게 비를 멋지게 새로
세우자고 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왜냐? 하면,
내가 조사한 것과 내용이 너무도 다른 것이었기에 새로 할 수가 없었다.

30마리의 당나귀를 동원, 강릉에서 쌀 5백가마니, 다 거짓말이다.
그때 내가 전화로 통화했다.
왜?, 의심스러운 점이 많아 직접 장규익씨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집안이 잘 살아 곡식을 풀었다구요?.’
‘아니, 장호 바닷가에 근무할 때, 물개를 총으로 쏴 잡아 그걸 판 돈으로 했소.’

그 앞에,
황지의 토박이, 고 장윤석(張允石:辛亥生신해생)옹의 증언,
그때 80세로, ‘태백의 지명유래’ 만드는데,
황지부분에 크게 기여한 분으로, 장 모 기자 아버지이다.
‘어르신, 황지못가에 장규익이란 사람의 선덕비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에 대하여 말씀 좀 해주세요.’
한참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어렵게 한 말씀,
‘목상들 알지? 당시에 황지지구에 도벌(盜伐)이 참 많았어, 걸리면 바로 징역살이야,
순사가 눈감아주면 괜찮지만, 그 비도 목상과 순사의 관계에서 우리들 모르게
세웠어, 그때 박씨네가 설두했었지.’

본디 황지 늪가에는 부사 金秉淵(김병연)의 선덕비가 있었는데,
그는 황지지구 화전민(火田民)들에게 곡식 700석을 나누어주고 환곡(還穀)의 폐해를 없애주며,
세곡(稅穀)을 감해 주는 등, 선행(善行)한 사실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고 비(碑)도 있다고 했다.
陟州先生案(척주선생안)에 보면,
“부사 김병연은 운산으로부터 계유 8월 18일에 왔다. 정사를 함에는 청렴하고 간소하며 강직하고 분명하여 관리와 백성들이 편안하였다. 부임기간 동안 백성들의 환곡 폐해에 7백석을 내어주고, 강원감영에 보고하여 세곡을 감해준 일로 비를 세웠다. 나이 70에 도정으로 승차하여 을해 9월 12일 갈리었다.”(府使金秉淵自雲山癸酉八月十八日來爲政淸簡剛明吏民便宜在官時還瘼七百石營報蠲減事竪碑以年七十陞都正乙亥九月十二日遞)
라고 하였으니, 참, 대단한 사람이고 선덕비를 세울 만 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 6.25전쟁이 끝나고, 경사 장규익의 비가 세워지며,
다른 곳에 있다가 황지 늪가로 옮겼다고 하는데,
부사 김병연의 선덕비는 사라지고, 장규익 것만 남았다.

왜정(倭政) 때부터 순사하면, 겁나는 괴물 같아,
아이들이 울거나 보채면, ‘순사 온다.’하면, 놀라서 울던 울음도 그치는 무서운 존재였다. 그러므로 순사에서 순경으로 이어져, 순경 꺼는 누가 잘 건드리지 않는다.

예컨대, 통리의 호재 아래에 순직 경찰비가 시멘트로 된 것이 있었는데,
6.25전쟁 뒤 삼척으로 출장 가던 순경이 피습되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고,
그 일 때문에 호재 인근의 주민들이 장성경찰서로 불려 다니며, 곤욕을 치른 일이 있었다.
그때 호재 인근 주민들이, 시멘트로 된 비를 세우자,
잠잠해진 일이 있었다. 물론 그 비는 사라졌다.

비(碑)라는 것이 닳으면 닳은 데로 그냥 두고,
잘못된 비라도 그냥 둬, 후대에 귀감으로 삼아야지, 섣불리 잘못 건드리면, 탈난다.
예컨대,
태백에는 사라진 비(碑)가 많다.
화전 삼거리 부근에 목비(木碑)거리가 있고, 통리 용정골에 시멘트로 된 여랑비(女娘碑)와 호재 아래에 순직 경찰비가 있었다, 그밖에도 동점 구무쏘에 비석거리가 있지만, 그뿐, 새로 세우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까지 비를 새로 세운 예가 있나?
그것도 아들이, 엉터리 내용으로 왜곡하며,
있지도 않은 거짓말로, 지 아버지를 미화하는 짓을,
창피한 줄도 모르는 파렴치 한 행동이다.
가짜 독립유공자로 밝혀졌는데도 비를 그냥 두는 거와
다를게 무엇이며, 세월이 흐르면 , 그래도 시장이란 자가 세웠으니 믿는 거지,
왕조시대 우악으로 세운 선덕비와 다른 게 무엇인가?
그것도 아무것을 모르는 일부 공무원들을 앞 세워...

문중 묘가에 새로 세운 비가 더러 있으나, 그건 다르다.
아랫 대에서 비를 세우며, 예의상 웃 대의 비를 세우는 경우가 더러 있기도 하지만,
비가 오래되어 낡아 글이 잘 보이지 않을 경우 세로 세우기도 하지,
하지만, 지 돈 지가 내어 지 땅에 지 조상 위하고자 하는데, 할 말이...

황지 늪가에 비 비슷한 엄청나게 큰 석물을 세우고,
거기에 덩달아 깨춤 추는 일부 공무원들, 아니, 시장 명의로...
황지 늪이 지 꺼냐?
일부 50클럽의 후예들이나 무지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 공부도 않고, 지역에 오래 산 사람들을 무시하고 행정권 좀 가졌다고 지 멋대로 하고, 시청을 장악하고 있는 거 같으며, 그거들이 태백을 다 망치는 거로 보인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미쳐 날뛰는 거 같고, 된장인지 똥인지 분간을 못하는 거 같고, 흡사 개가 똥덩어리를 보고 환장하여 달려드는 거와 같다.

지역의 나이 많은 한 사람으로 잘못 되어가는 거를 바로 잡고자 쓴 소리를 하는 거다.
엉터리 가짜로, 향토사(鄕土史)를 왜곡(歪曲)하면, 후대 사람들이 잘못 알면서 믿게 되고,
지금 사람들은 같잖아 한다.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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