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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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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태백문화원 이야기
작성자 김강산
내용 태백문화원 이야기

태백시가 되고 나서 몇 년 뒤인,
서기1984년 10월 1일 태백문화원이 개원(開院)하였다.

처음 내가 사우디아라비아에 근로자로 근무하다 귀국하여 인사차,
우성조(禹星祚:己卯生기묘생)씨에게 갔더니, 그가 하는 말,
‘내 동창 황윤덕이가 새로 생기는 태백문화원에 초대 원장이 되었는데, 내가 볼 땐 자네가 사무국장으로 적임이라고 생각되는데, 내가 소개해 줄 까?’
그때 내가 향토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소문이 났고,
또 나도 싫지 않은 제안이었기에,
‘예, 소개시켜주십시오.’ 하여,
태백문화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처음 신청은 그해 곧 서기1984년 2월 19일에 문화부에 하였으나,
정부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차일피일 하다가 그해 9월에 비로소 허가가 떨어졌다.
그 6~7개월의 기다리는 시간에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허가가 낫지만, 원사가 없어,
장성읍사무소 빈 건물로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몇 달 앞에 들어온 모 목사가 운영하던 대구대학 복지대학인가 뭔가가 비워주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장성동 392번지, 초대 원장 황윤덕씨의 개인 건물 2층으로 수리하여,
그해 10월 1일 개원을 하였다.

그 앞에 이야기를 좀 하겠다.
태백문화원으로 신청이 되고 사무국장으로 내정은 되었지만,
딱 한사람이 반대를 하였다.
누구냐 하면, 그때 강원일보사 기자를 하던 김영훈(金永勳:己卯生기묘생)씨 였다.
몇 년 앞 김영훈씨가 나를 불러 향토사에 대한 글을 부탁하였고, 그 글을 실어 주겠다고 하여 심혈을 기우려 나름 글을 써, 그때는 원고지가 없어, 마분지 10여장에 달하는 것을 김기자에게 주었다.

그 뒤, 강원일보 신문에 내 글 비슷한 것이 나오긴 하는데, 그 뒤의 글에 김영훈 기자 이름만 나오는 것이었다.
찾아가 항의를 하였지만, 그런 것이 아니란 말만하였다.
화가 난 나는 선배고 뭐고 없다며, 막말을 하고 나온 것이, 이제와 사무국장 내정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가 된 것이다.

그때 김영훈씨의 아버지 김공태씨가 돌아가셨다.
절골로 문상을 가서 정성껏 했더니,
‘내일 발인인데, 문곡 갓밭뜨리에 장사하니, 시간 있으면 한번 와 달라.’고 하였다.

그 이튿날 문곡 갓밭뜨리에 가보니,
작은 산봉우리 밑에 광중을 내어 놓고 하관시간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30분 정도 있어서 내가 광중 안으로 내려가 살펴보니,
붉은 흙에 돌이 박혀 있기에, 이렇게 묻으면 아니 된다고 하니,
그곳에 터를 잡은 사풍수라는 사람이 그 돌은 석란(石卵)이라 괜찮다고 하며, 가방에서 풍수책을 끄집어내어 흔들며 여기에 다 나와 있다고 큰소리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책을 자세히 보니,
지난날 내가 읽은 책으로 위서(僞書)라고 결론을 내린 그 책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미 다 읽어서, 그 내용은 다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고, 그 책은 가짜책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은 벌컥 화를 내더니 가 버렸다.
풍수라는 사람이 가버리자, 내가 할 수 밖에,
그래서 다시 광중(壙中)을 살펴보니 한 30㎝정도 더 파면,
붉은 흙이 사라지고 새로운 흙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곡괭이로 땅을 파기 시작하니,
김영훈씨와 의형제를 맺었다고 하는, 김창한씨가 나서며,
‘강산씨 비켜봐, 내가 할 게’ 나는 광중에서 나와 광중머리에 올라가,
김창한씨가 파는 광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며 묻자,
김창한씨가 말하길,
‘강산씨가 땅을 더 파야 된다고 하여 지금 하고 있다’라 하였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모여 섰던 사람들이 봤다.
30㎝정도를 다 파도 맨 붉은 흙만 나오니, 내려다보는 나는 난감하였다.
그때, 땅을 파던 김창한씨 곡괭이 끝에 하얀 흙이 묻어 나오는 것을 본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있었다.
붉은 흙이 사라지고 하얀 마사토가 나오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와~명당이다.’하였다.
기분이 좋아진 상주(喪主)와 일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그 뒤 강원일보 사무실로 찾아간 나는 김기자에게,
‘선배님 일 좀하게 도와주십시오, 저의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김기자가 말하기를,
‘나도 잘 한 거 없네, 미안하네, 우리 앞으로 잘 해 보세.’
그 일 뒤에 태백문화원에 들어오게 되었다.

서기1987년 초대 원장 황윤덕(黃潤德:壬午生임오생)씨가 그만 하겠다고 하여,
제2대 원장으로 의원(醫院)을 경영하던 장인원(張仁源:丁丑生정축생)씨가 되었다.
그래서 개인 건물을 비워줘야 했다.
장인원씨는 그때 시장과 고위 공무원들을 황지에서 알아주는 술집으로 초대하여,
술을 대접하며, 시청사 옆의 가건물을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알았다고 하였다. 몇 차례 하였다.
그러나 막상 이사하려 하니 서로 미루기만 하였다.

그때 들리는 소문에 고위직 공무원이 그 자리를 탐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무조건 장성에서 이삿짐을 싣고 황지로 올라와,
가건물에 들어가려 하니 문이 잠겨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때 태백문화원 청년회원 가운데, 비교적 날씬한,
임경호씨가 선풍기 환기구로 기어들어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열쇠를 바꿔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가건물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태백문화원 서쪽 공간에 ‘쌈지공원’이라고 만들었다.

그 때부터 나를 왕따 시키는 일이 벌어졌으며,
그 중심에는 김영훈씨가 있었다.
그는 제2대 태백문화원장을 만든 사람이라, 부원장도 하며, 슬슬,
태백문화원을 장악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최대의 걸림돌이 김강산이란 자였다.
들리는 이야기로 자기의 의형제 가운데 한 사람을
태백문화원 사무국장을 시킬 것이라는 말도 들렸다.
드디어 하루는 김영훈씨가 나에게 태백문화원 사무국장을 그만 두라고 하였다.
나는 반발하며 이유 없이 그리는 못하겠다고 대들었다.
결국 이사회를 열었고, 최후 변론으로 내가 나서서, 이사들에게,
‘태백문화원장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무국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이사님들의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하였고, 이어,
이사들 투표 결과 만장일치로 사무국장에 재신임되었다.
그 뒤 김영훈씨는 진해에 정착하였다 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제3대 태백문화원장에 우성조(禹星祚:己卯生기묘생)씨가 되었다.
우성조씨는, 내가 태백문화원에서 일할 수 있게 한 사람으로,
나를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었다.
그때 그는 보험회사 소장으로, 나중엔 국장을 한 사람으로 결재를 받기 위해 보험회사 사무실로 갔다.
보험회사 사무실에 결재 받는 사람이 어디 나 혼자뿐인가?
다른 과장들 뒤에 서서 순서를 기다리기도 하였다.

그때 태백의 국회의원이 류승규(柳昇珪:甲申生갑신생)씨 였는데, 년말 쯤,
태백문화원에 들렀는 것을,
제3대 원장 우성조씨가 태백문화원 원사 신축을 도와달라고 하자,
그 자리에서, 강원도로 전화하여 도지사 바꾸라고 하였다.
그때 도지사에게 ‘도에 남은 돈이 얼마나 있소?’ 하니,
‘달달 긁으면 한 5억 원 정도 됩니다.’라고 하자,
‘그 돈을 태백시로 좀 보내 주시오.’하였다.
그래서 이듬해 서기1990년 11월에 태백문화원 원사를 신축(新築)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태백문화원이 없는 가건물 터에 주차장을 만든 것이 지금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태백문화원 건물은 시비(市費)로 지은 것이 아니라, 도비(道費)로 지은 것이며, 그 중심에는 류승규 국회의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루는 시장실을 찾아가 홍순일(洪淳佾:丙戌生병술생) 시장을 만났다.
‘시장님, 제 월급이 얼마인지 아세요?’하니,
‘얼마요?’하기에, ‘60만원입니다.’ 그 앞에는 20만원에서 40만원 받았지만,
깜짝 놀라며, 아래 공무원에게 지시하여, 파격적으로 해 주었다.
군생활 3년을 포함 3호봉 계장 봉급으로 시작하였다.
이것이 내 봉급 현실화한 일이다.

처음 태백문화원 사업비는 국비(國費)였는데,
나중에 지방자치법이 시행되자 지방비로 이관이 되었으며 시비(市費)가 되었다.
그 뒤 모 시장이 문화원장을 지 종 부리듯 하려고 하고, 내가 반발하며,
자기 하자는 데로 관변단체를 안하자, 보조금을 안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행정소송을 하게 되었고, 1심에서 패하자,
‘그래, 잘 해 봐라.’며 문화원에서 나온 것이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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