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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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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朴正熙 흠집내기 '역사 바로 세우기' 해법 ??
작성자 김명화
내용 우리는 일상 속에서 '어줍잖은 꼬락서니'들을 무수히 목격하며 살아가고 있다. 파상적 양상을 띄면서도 집요하다싶을 정도로 일관되게 진행되고 있는 분명한 흐름이 존재한다. 그런 류의 대표적인 흐름 가운데 하나가 다름 아닌 '박정희 끌어내리기'이다. 이런 흐름을 지켜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남 박지만씨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렇게 무서운가요"라고 되물었다. 8년만에 처음 갖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온 순수한 반문이다. '

의도적이든 아니든 최근 박대통령과 관련이 있었던 이런 저런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일협정 체결과 대일 청구권 자금 관련 시비' '육영수 여사 사망과 문세광 사건' '광복 60주년에 맞춰 박 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 바꿔 달자는 주장' '10·26 사태 당일 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 '박정희 기념관 설립 무산' '국가정보원의 박정희 시대 사건(정수장학회·인혁당 사건·DJ납치사건 등) 위주의 과거사 규명 작업' 등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에는 이른바 '의문사 진상규명위' 위원장의 '박정희 간첩론'까지 등장했었다. 

이 모두가 야당 대표를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라 진행되는 여권의 계획적인 시나리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박정희 이미지 지우기 또는 끌어내리기를 통해 정치적으로 반사이익 효과를 기대하는 측이 여권(與圈)일 수는 있어도 보수야당일 리는 만무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잘한 점이 더 많다"(81.8%)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점이다. 국민은 정계 일각의 '정치적 반대급부'를 겨냥한 술수를 비웃고있는 것이다.

박정희와 그 시대에 대한 국민의 진정한 바람은 감정에 치우친 '때리기·끌어내리기·지우기'가 아니라, '박정희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박정희 시대의 극복'임을 이 조사결과는 말해주고 있다. 국민이 정치인들에게 한 수 가르치고 있는 격이다.

박정희 시대는 그 역사적 성취 못지 않게 짙은 그늘을 드리웠던 것도 사실이다. 72년 10월 이후 유신시대가 더욱 그러했다. 친북 좌파는 그 시절을 말할 때 반드시 '군사독재'라는 접두어를 덧붙인다. 하지만 박정희 시절을 '군사시스템을 중심축(軸)으로 한 권위주의적 정부'라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스탈린 독재' '김일성의 세습독재'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에 견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세습독재의 신정(神政)체제 장본인인 김일성-김정일에 대해서는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일성 동지)으로 떠받들면서 박정희에 대해서는 유독 '독재의 화신(化身)'인양 몰아붙이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편향적 절름발이 사고(思考)이고 어불성설이다.

누가 뭐라 해도 박정희는 5,000년 역사 내내 떨쳐내지 못했던 '보리고개로 상징되는 가난'을 사전에서 지울 수 있었던 지도자였다. 자학에 빠진 한국인에게 자신감과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우고 이를 실천한다는 것은 치밀한 계획과 엄청난 역량이 전제되는 대서사시(大敍事詩)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26사태 4반세기가 지나도록 우리는 정작 그에게서 부정축재의 그림자 조차 찾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5·16이 있었던 1960년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이었다. 당시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는 우리보다 2∼3배나 더 잘 살던 '앞서가는 나라'였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68불(1961년 84불)은 '필리핀 170불' '태국 220불'에 비해 크게 뒤지는 수치였다. 인도가 고작 우리 뒤를 잇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어떤가. 필리핀은 1인당 국민소득 1,030달러로 우리의 11분의1이고, 인도네시아는 968달러, 태국은 1,940달러, 한국의 두 배 수준이었던 북한의 국민소득은 우리의 1/33선에 머물러있다. 

해방이후 5·16 직전(1959년)까지 15년간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연평균 1억8천만 달러의 원조를 제공받아 살림을 꾸렸다. 그것도 현금이 아니라 물자였다. 정부는 미국에서 받은 잉여농산물 유연탄 석유 등을 시장에 팔아 그 돈으로 세출예산을 세웠다. 기업이라고는 없다시피 했던 그 시절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곳은 없었고, 농촌인구의 80%는 보릿고개를 일상사로 여기며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할 정도로 경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피폐했었다.

그 시절 우리가 자주 접하는 친숙한 단어들은 코리언타임·사치·도박·사교춤·게으름·양주·밀수품·축첩(蓄妾)·방탕·정경유착·부패·사기꾼·정상배(政商輩)- 이런 것들이었다.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팔았고, 쥐를 잡아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수출하던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계언론의 찬사는 자원빈국 대한민국이 1965년 1억달러 수출을 기록하면서부터였다.

한국은 이제 반도체 조선(造船) 등 77개 품목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년 대비 32.7%나 늘어난 2004년 한국의 수출성장률이 말해주듯이 매년 해외에 더 많은 물건을 내다팔고 있다. 그래서 교역 규모도 세계 12위 수준이다. 인구 100명당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수는 21.3명으로 1위이고, 인구 1천명 당 인터넷 사용자수는 603명으로 2위, PC 보급대수는 인구 100명당 56대로 8위를 기록할 정도로 정보화 분야에서도 선두에 서 있다.

여전히 높은 성장동력을 잃지 않아 경제의 안정성도 IMF 외환위기 이전에 견주어 훨씬 높아졌고, 받을 돈이 더 많은 10대 채권국가이며, 외환보유고는 근 2천억 달러로 세계 4위 수준이다. 세계가 놀라워하는 '무서운 아이'가 대한민국인 것이다. 그 시절에 구축된 토양과 시스템이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금자탑인 것이다.

'20세기초의 식민지 수탈' '지난 세기 중반의 분단과 전쟁 경험' '군정(軍政)으로 인한 민주주의체제의 단절' '경제위기로 인한 국가 부도사태 경험'- 우리는 이 많은 어려움을 강인한 기초체력을 바탕으로 맨손으로 극복하고서 글로벌 시장에 뛰어들어 콧대 높은 다국적 기업들과 맞서 싸우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우리경제의 역동성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의 기초가 박정희의 근대화 의지와 열정적이고도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박정희는 '끌어내리기' '흠집내기' '지우기'는 어떤 경우에도 '역사 바로 세우기'의 올바른 해법(解法)이 될 수 없다. 박정희 시대는 우리 모두가 극복하고 넘어서야 하는 분수령일 뿐이다. (konas)

정  준   (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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