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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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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동조합에 대한 생각
작성자 이상은
내용  

노동조합에 대한 생각

 

한 때는 한글이나 겨우 깨치고 공장에 들어간 어린 노동자들이 노동자도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잔업철야를 밥 먹 듯하면서도 열심히 노동법을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동생들을 보며 공장의 언니, 오빠들은 더욱 분발하여 자식들이라도 가난하고 못 배운 이유로 천대를 받지 않게 해야 한다고, 빨갱이로 몰려 해고당하면 고향의 부모형제들이 당장에 시름에 빠질 것을 알면서도, 앞장서서 조직을 꾸리고 노동조합을 결성했습니다.

그 시절의 노동운동은 곧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했기에 순자가 버스 회수권이 떨어지면 미숙이가 회수권 뭉치를 내 주었고, 미숙이가 라면 값이 떨어지면 동우가 쌀을 퍼다 주었습니다. 너무 절대적으로 없이 사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나눌 줄 알았고, 너무 힘겨운 노동을 했기 때문에 거기서 짤리면 굶게 될까봐 서로 일을 도와주며 허물을 감추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의 희생이 헛된 것이 되지 않으리라 믿었고 적어도 어린 동생들, 자식들은 노동자가 되어도 보람을 갖고 살 수 있으리란 기대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해고되고 구속되어 가며 힘겹게 노동운동을 한 덕에 여기저기 노동조합이 우수죽순처럼 조직되었고 그야말로 노동자들이 힘을 갖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동자 조직인 노동조합이 힘을 갖게 될 수록 노동운동의 선구자들이 원했던 것처럼 못 배우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더불어 잘살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일부의 선택된 노동자 계층은 갈수록 배를 불리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갑자기 만들어진 외주업체의 직원으로 밀려나거나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더 불안해진 것입니다.

이것은 회사 측에서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임금 지출을 줄이려한 탓도 있지만 자기가 속한 집단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노동자들의 이기심도 한 몫 한 것입니다. 어쩌면 과거에 희생적으로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이 지금 어느 회사의 외주업체나 용역회사에서 일하며 노동운동의 현실을 개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요즘 들어 이십년 전에 희생적으로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이 당시의 진실을 알리려 하는 것도 이런 암담한 현실을 보며 과거 자신들의 순수했던 열정을 소중히 보호하려는 뜻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값진 희생을 통해 맺어진 열매가 온갖 더러운 뇌물과 채용 장사로 범벅이 된 작금의 노동운동이니 어찌 자신들의 과거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좀 지난 얘깁니다만, 강원관광대학교 노동조합의 파업을 보며 저는 학생들의 소리를 좀 들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의 불만이 예사가 아니더군요. 어째 이 학교는 입학한지 몇 달이 돼도 총학이 없느냐, 우리들이 대자보를 붙이려 하면 허가 받지 않았다고 떼는 아저씨들이 왜 자기들은 맘대로 대자보를 붙이느냐, 우리 돈으로 월급 받는 사람들이 왜 학생들을 이렇게 무시하느냐, 학교가 이렇게 시끄럽다면 분명 나쁜 학교인데 잘 못 들어왔다.... 이런 얘기들을 들으며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노동조합에서 그런 태도를 취할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이곳에 노동조합 좋게 봐달라는 글이 올라오기에 이젠 뭔가 대 타협을 이룰 자세가 되었나보다 했더니, 더구나 무노동 무임금까지 감수하며 투쟁하고 있다 하기에 뭔가 다른 진심이 숨겨져 있었나보다 생각하였더니, 학생들 등록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들이 총학이 출범 못하게 막는 것도 모자라 갖은 어려움 속에 공부하는 학생들 시험까지 방해한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그러한 행위는 노동자의 권리 행사 이전에 학생들의 기본권을 빼앗는 행위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노동조합은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노동조합으로 보이지 않으며 그런 활동을 방관하거나 부추기는 상급기관이 있다면 그 역시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조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에 노동조합 활동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던 국민들이 지금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적당히 절제만 하면 잘 살수 있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임금인상에 목숨을 걸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피해까지 주는 경우를 숱해 봐왔기 때문입니다.

 

강원관광대학교에도 노조원들보다 어려운 형편에 빚을 내며 자식을 공부시키는 부모가 계실 것이고 알바거리를 못 찾아 애태우는 학생들이 있을 것입니다. 경제가 어려우니 갑자기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가족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원들이 학습권 까지 침해하는데 그 누가 노동조합의 편을 들겠습니까. 시민들은 노동조합이 자기네들을 좋게 봐 달라는 말을 한다고 해서 좋게 보는 게 아니라 하는 행실에 따라서 판단합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 돈이 중요한 요소는 될 수 있으나 다는 아니듯이 노동자의 처우개선이라는 문제에서도 임금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강원광광대학교 노동조합은 너무 지나친 투쟁으로 인하여 스스로 사회적인 지위를 떨어뜨린 것 같습니다. 과거에 노동조합원들은 회사에서는 미움을 받을지언정 동료나 지역사회에서는 흠모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자부심과 명예가 있기에 온갖 고난 속에서도 잇속을 생각지 않고 노동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강원관광대학교 노동조합의 경우는, 제가 시야가 좁은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쪽으로 귀를 기울여 봐도 노동조합의 활동에 감동하고 동조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바로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가 있기에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망각했거나 외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를 하는 주체들이 자신들과 똑같이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진 살아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망각했거나 외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더 어리지만 더 큰 집단인 학생들에 의해 쫓겨나기 까지 한 것입니다. 학생들이 노조원들을 상대로 그동안의 파업에 따른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벌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던 차에 이런 일이 벌어지니 참 난감합니다. 또 소위 노동운동의 선배라는 자들이 후배 노동자들이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에 힘을 보태주는 데에서 그 운동의 정당성마저 의심하게 됩니다.

 

노동조합의 합리적인 활동은 지역민의 의식수준을 높여주고 지역사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줍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시민의 시선은 얄팍한 수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큰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강원관광대학교 노동조합이 이렇게 변화하려면 알량한 명분 쌓기에 골몰하기 보다는 뼈를 깎는 반성과 함께 더불어 살고자하는 부드럽고 진득한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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